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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베스트 에니메                .


한때는 소설가, 혹은 시나리오 라이터를 꿈 꾼 적이 있었다.    지금도 그 꿈을 아주 제쳐놓지는 않았지만 가끔가다 사람을 놀라게 하는 작품을 볼 때마다  스스로의 한계와 미숙함을 느낀다.
그런 놀라움을 느끼게 하는 것들 중에 하나가 쓰르라미 울 적에라는 일단의 미디어 믹스군이다.

시초는 동인게임이였다. - 일본의 특이한 오타쿠 문화중에 코믹마켓이라는 행사가 있다.  이 코믹마켓에 개인의 창작품이나 여러가지 문화작품들의 팬북이나 패러디 작품류 같은 이차 가공품들이 팬들에 의해서 사고 팔린다.
이런 류를 동인지, 동인작 이라 부르는데 기본적으론 상업적인 작품들에 비해서 퀄리티도 떨어지고 대부분 에로계로 흐르는 경향이 있는데 그중에는 상업적인 작품들을 뛰어넘는 작품성을 가진것들이 간간히 있곤 하다.

그러나 동인작들의 최대의 강점은 역시나 참신함이라 해야 할게다.  상업적인 계산에서 시도하지 못하는 참신한 기획과 아이디어들은 그 강점을 알아보는 팬들에 의해서 자생적으로 커져나가고 결국은 상업화로 재생산되는 경우도 있다.  타입문의 작품들이 그런류의 대표적이라 할수 있겠다.
- 은근히 잘 아는듯 보이지만 동인게임이나 동인지까지 신경쓸 시간도 없고 시간도 없다....OTL 
쓰르라미 울 적에도 사실 하도 입소문이 심하길래 어떤가 하고 본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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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자켓 일러스트는 그나마 실제 게임보다 잘 나온거임....ㅋ


결정적으로 쓰르라미 울적에는 논할 때는 원작인 게임이 기본이자 필수라고 한다.
하지만 플레이 타임 총합이 100시간은 우습게 넘어가는 이 게임을 손대기는 죽기 전까진 없을듯 하니....ㅡ.ㅡ;;;
에니메이션을 본 소감부터 말하자면....


1.
작가는 천재다....... (다만 2기 마지막 마츠리바야시부분은 좀 너무 했다.....ㅜㅜ  갑자기 액션물로 변하다니..)
2. 원작게임을 해보지 않아서 얼마나 더 많은 요소들이 생략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작품으로서의 쓰르라미 울적에의 스토리를 이 정도면 충분히 구현한거 같다.
3. 1기는 정말 매니아들에게 엄청나게 욕을 들어먹던데 작화를 그다지 안따지는 본인에겐 스토리 전달 측면에선 그 정도면 훌륭하지 않았는가 싶기도 하다.   (특히 시온의 이야기인 메아카시 부분이 욕을 엄청 먹던데...게임의 스토리를 들어봐도 뭐 시온의 어쩔수없었던 처지의 확실한 전달 측면에선 수긍은 가도 그정도면 충분하지 않은가 싶기도 하다. )
4. J-POP을 그닥 좋아하지는 않는데 1기, 2기 둘다 오프닝 엔딩이 죽음이더라....ㄷㄷㄷ
5. 고어물은 생리적으로 싫어해서 안보는데 이 정도면 뭐 봐줄만하지 않는가 싶다.  (잔인하지 않아서라기보단 표현적인 측면보다 스토리에 너무 몰입이 되서 그런듯.....사실 장면 하나하나 따지면 속이 뒤집어 질정도 메스껍다..)
6. 왜 사람들이 모에한 캐릭터에 미치는지 자~~~알 알겠다......  리카짱....너무 귀여워서 깨물어주고 싶더라...ㅋ



사실....쓰르라미 울 적에는 추리물로 시작하여 드라마로 성격이 바뀌다가 최종편에서는 액션 활극 (그것도 말이 안되는 - 중학생이 특수부대 대장을 쓰러뜨려...ㄷㄷㄷ....여중생이 부비트랩으로 특수부대원을 2/3을 아작을 냄..ㅡ.ㅡ;;; 이것 때문에 말들이 많긴 하더군요..)


처음 에니메이션의 제목을 아주 오래전에 들었을땐.......
"한적한 일본의 농촌의 어느 학교에 - 미소녀들이 우글우글한 - 어떤 놈팽이가 전학와서  할렘을 꾸미는구나 하고 생각했었다.  일단 제목부터 전원적이지 않은가.....
그런데....이건 뭐 오프닝부터 야구 빠따로 소녀 둘을 아작을 내는걸 보고.....ㄷㄷㄷ

이게 정도가 심해져서 이건 뭐 사람 죽어나가는건 이젠 우스울 정도.....

그런데 스토리 하나는 참 기가 막힌게 처음에는 잘 모르겠는데 회가 하나하나 지날수록 엄청난 몰입감을 주고 - 특히나 연출이 정말....ㄷㄷㄷ - 어느 기점을 지나면 무언가 머릿속을 스치는 깨달음이 생긴다.
그 깨달음을 얻은 후에는 추리물에서 드라마로 성격이 변해가는데 이 드라마의 시청자를 몰아가는 솜씨가 아주 대박이다.
특히나 내가 가장 좋아하는 편인 해답편의 미나고로시는 정말 가슴이 아플정도.....ㅜㅜ

실사영화 말고 에니메이션에선 스토리에 몰입은 될지언정 인물에 감정이입을 해본 역사가 없는데 쓰르라미 울적에는 모든 등장 인물이 너무 불쌍하고 슬퍼서 정말 다음편을 보기가 무서워질정도였다.
그러나 모든 의문이 다 해결되는 마츠리바야시는 그렇게 풀릴수밖에 없는 주제였기에 이해는 하지만 너무 액션 활극으로 넘어가서 솔직히 수긍은 가지만 감정적으로 너무 거부감이 일어날 정도....

스토리는

1부 와타나가시, 2부 오니카쿠시, 3부 타타리고로시, 4부 히마츠부시, 5부 메아카시, 6부 츠미호로보시 까지가 1기

오리지날 스토리 + 7부 미나고로시,  8부 마츠리바야시 까지가 2기

문제편이 1-4부  해답편이 5-8부

문제편은 히나미자와 마을에서 일어나는 원인불명의 참극들을 보여주고 왜 이런 참극이 있어났는 지에 대해 의문을 풀게한다.  즉 플레이어 들에게 언제나 참극으로만 끝나는 이 이야기들의 해답을 요구하는 것이다.
각 참극들은 추리는 커녕, 어디가 의문인지 조차 알기 힘든 난해한 문제들로써, 이 문제들에 대해 시나리오라이터인 용기사07은 [정답률 1%]라는 도발적인 문구를 제시하고 있다.

그리고 나중 4편은 처음 4편에 대입하는 구도로, 처음에 일어난 4가지의 참극들의 원인과 그 회피 방법을 제시하는 이야기. 즉 '해답편'으로 되어있다.   여기서 중요한건 해답편의 이야기 구조이다.
4가지 있는 해답들은 전부 다른 방식으로 해답을 보여주는데, 그 방법들이 전부 다 기가 막힐 정도로 뛰어난 구조로 되어 있다.


'와타나가시'의 해답편인 '메아카시'에서는 시점을 달리해서 같은 사건을 2번 비춰주는 것으로 해답을 보여주고,
'오니카쿠시'의 해답편인 '츠미호로보시'에서는 비슷한 사건을 이번에는 당사자가 아니라, 방관자로 비춰줌으로써 해답을 보여준다.
'타타리고로시'의 해답편인 '미나고로시'에서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절망적인 선택기 중에서 한발 더 나아간 숨은 선택기를 골라서 해답으로 이끌고,
'히마츠부시'의 해답편인 '마츠리바야시(미오츠쿠시)'에서는 이야기의 진상을 전부 공개해서 쓰르라미에 존재하고 있는 모든 수수께끼의 해답을 보여준다.


난 잔인한거 못봐......하는 사람은...꼭 보라........(대신 스토리에만 집중하라....나는 호러, 고어물은 죽어도 못보는 새가슴이지만 새벽 2시까지 꼬박꼬박 봤다...그만큼 중독성 있는 스토리라인..)

난 귀여운 캐릭터라면 사족을 못써...하는 사람은 꼭 보라........ (난 오덕이 아냐!!!....했는데...알고 봣더니 나도 오덕기질이 있는거 같다....리카짱....너무 귀엽....ㄷㄷㄷ )

난 스토리가 부실한건 죽어도 못봐......라는 사람은 꼭 보라...  (적어도 호러물에선 내가 본 가장 최고의 시나리오이다.  듣자하니 극락도 살인사건이 쓰르라미 울 적에 표절이라 하던데 1/10 도 못배꼈다고 하더라....ㅋ )

(전혀 별개의 이야기 같지만, 사실은 하나의 이야기)라는 구조에 한번 놀라고, 여기서 깨닫는 정답들이 듣기 전까지는 전혀 예상치도 못할 경악스러운 사실이지만 듣고보면 매우 납득이 가는 이야기인 것에 두번 놀란다.
그리고 그 정답이 어떤 이야기보다 작품의 메시지를 가장 효과적으로 전달 해주고 있다는 놀라운 시나리오적 완성도에 감탄을 금할 수가 없다.

참극으로 뒤덮혀서 문제가 무엇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어려운 문제편
그리고 이 문제편의 의문을 전혀 의외의 방법으로 완벽하게(이게 중요하다!) 해결해주는 해결편

4편을 보충하는 4편의 이야기가 아니라 8편의 이야기라는 말이 어울리는 이 탄탄한 구조
사실 쓰르라미는 공포적인 요소보다도 독특한 문제와 기발한 해답의 조화가 가장 대단한 부분이고 가장 자랑해야 할 부분이다.







마지막으로 이 게임, 에니메이션의 성격을 확실히 보여주는 정말 잘 쓰인 리뷰를 한편 소개 한다. 
(리뷰는 게임을 베이스로 적혀 있으나 그닥 지장은 없다....)
출처 : http://seablue.egloos.com/2214399





부디 탄식하지 마세요.
세계가 당신을 용서하지 않아도, 나는 당신을 용서합니다.

부디 탄식하지 마세요.
당신이 세계를 용서하지 않아도, 나는 당신을 용서합니다.

그러니까 가르쳐 주세요.
당신은 어떻게 해야, 나를 용서해 주겠습니까?

《쓰르라미 울 적에-오니카쿠시 편(鬼隠し編)의 오프닝》



자, 이곳에 한 개의 '미스테리 사건'이 있습니다.
범인은 불명, 사용된 트릭도 불명. 오로지 피해자의 절규만이 남아 있는 처참한 사건.
당신은 이 사건에, 어떤 '해답'을 바랍니까?
대부분의 이야기에서는, 탐정이 나타나서 증거를 모아 범인을 추적하지요. 그 와중에 또 이런저런 사실들이 밝혀지고, 마침내 탐정은 모든 이들을 모아놓고 이렇게 말합니다-"범인은 이 안에 있다!"
뭐 이야기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겠지만요. 기본적으로 미스테리 사건에서 작가가 내놓는 해답이란, 그리고 독자들이 원하는 해답이란 그런 겁니다. 범인은 누구이고, 그 동기와 트릭은 이러하다.

그러면 말이지요.

이런 해답은 어떠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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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의 장르는 사운드 노벨(주의! 비주얼 노벨이 아닙니다)입니다만...사실 이것을 '게임'이라 할 수 있는지는 상당히 애매하지요.
우선, 이런 식의 텍스트 어드벤쳐가 일반적으로 가지는 '선택지'가 없습니다. 플레이어가 하는 일이라고는 그저, 화면을 보며 마우스를 클릭해 문장을 넘기는 것 뿐. 이래서야 '책을 읽으며 책장을 넘기는 행위'와 하등 다를 것이 없습니다.
그리고 선택지가 없기 때문에 당연히 파생되는 것-각 루트가 별도 발매 되었습니다. 다른 게임들처럼 이 선택지 다음에 저 선택지를 고르면 A 히로인, 저 선택지 다음에 나오는 그 선택지를 고르면 B 히로인이라는 식이 아니라 아예 각 루트가 다른 제목이 붙어서 발매가 되었습니다. 오니카쿠시 편, 와타나가시 편...이런 식으로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게임다운 요소라고는 없는 작품입니다만, 제작자는 홈페이지에서 이렇게 공언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게임이다'라고.

어째서 그런지 한 번 살펴볼까요?
'쓰르라미 울 적에'라는 게임은, 이 포스팅의 초두에 언급한 바가 있는 '미스테리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주인공은 이유를 알 수 없는 음모에 휘말려들어, 발버둥을 치다가 결국 끔찍한 최후를 맞이하고 말지요. 어떤 루트를 플레이한다 해도, 이 기본 골격은 변함이 없습니다.
그리고 그곳에 있는 것들은 힌트일 뿐, 해답은 주어지지 않습니다.
결코. 마지막에 탐정이 나와서 '범인은 이 녀석이다!'라고 말해주지 않습니다. 어떤 음모가 있었고 어떤 트릭이 있었는지도 말해주지 않습니다. 탐정의 역할은, 이 이야기를 읽은 '플레이어'에게 내던져질 뿐입니다. 아니, 이미 모든 사건이 비극으로 막을 내렸으니, 플레이어의 역할은 탐정이라기 보다는 그저 주어진 문제를 푸는 학생에 가깝지요. 게다가, 주어져 있는 힌트라는 것도 미미하기 그지 없습니다. 사람이 한 일인지 아니면 무언가 초자연현상에 의한 것인지조차 단정하기 불가능할 정도.
결국 플레이어는 작은 단서에서라도 온갖 상상력을 덧붙여 해답에 이르는 이야기를 구축해보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일반적인 '증거 짜맞추기식 추리'가 아닌 이러한 '상상력에 의한 추리'는 사람마다 가지각색의 결과가 나오기 마련. 자연히,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상상하였는지가 중요하고-또 그 상상을 듣는 것 자체가 너무나 흥미진진해 집니다.
이곳에서 '게임'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PC 화면을 보고 마우스를 클릭하며 진행하는 게임이 아닌, 사람과 사람 사이에 두뇌게임.
이것은 제작자와 플레이어 사이의 게임이기도 하며, 플레이어와 플레이어 사이의 게임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실제로 이 쓰르라미 울 적에라는 '게임'은 대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수많은 이들이 이 게임에 동참하였고, 그에 따른 상업적 성공을 바탕으로 올 봄에는 애니메이션이 만들어질 정도. 동인 게임의 애니메이션화라는 것은 '월희'와 동등한 기적입니다. 물론 월희가 이미 '동인 게임의 애니화'라는 첫 길을 닦아 놓은 영향이 큰 것은 무시할 수가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쓰르라미 울 적에의 성공이 빚바래지는 않습니다.
매년 여름과 겨울 코믹마켓에 발매되는 쓰르라미 울 적에는-오니카쿠시 편/와타나가시 편/타타리고로시 편/히마쯔부시 편으로 이어지는 이른바 '문제 편'을 끝내고, 지금은 메아카시편/쯔미호보로시 편/미나고로시 편이라는 이른바 '해답 편'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제 올 여름에 발매되는 대단원 '마쯔리바야시 편'만이 남은 상태.
네. 미스테리 사건이라는 문제를 던지는 4개의 '문제 편'이 나왔고, 그리고 아마도 그 문제들의 해답에 해당할 '해답 편'이 나왔습니다.

그러면
이곳에서 다시 묻겠습니다.

이곳에 한 개의 '미스테리 사건'이 있습니다.
범인은 불명, 사용된 트릭도 불명. 오로지 피해자의 절규만이 남아 있는 처참한 사건.
당신은 이 사건에, 어떤 '해답'을 바랍니까?

범인은 누구이다. 그 동기와 트릭은 이러하다.
그런 해답을 바라시나요?

그렇다면
이런 해답은 어떠신가요?


'어떻게 하면 사건이 일어나지 않을 수 있었는가'하는 해답 말입니다.


모 추리만화를 패러디하는 것 중에 이런 말이 있지요. 그 탐정은 죽을 사람들 다 죽으면 그제서야 범인을 밝혀낸다. 밝혀 내는 것도 그냥 밝혀내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 다 모인 곳에서 범행에 사용된 트릭을 하나하나 폭로하며 몰아붙여 결국 궁지에 몰린 범인은 스스로 목숨을 끊게 만든다.
꼭 그 추리만화가 아니더라도, 추리물이란 대게 '사건이 발생한 후'의 뒷처리를 하는 내용입니다. 우선은 누군가가 죽어야, 무언가가 없어져야 이야기가 시작되지요.
하지만 생각해 봅시다.
'해답'이라는 것은, 꼭 범인을 잡아내어 그를 감방에 쳐 넣는 것만을 이르는 말일까요?
범인이 잡히고 트릭이 밝혀지면? 그렇게 되면 모두가 행복해 지나요? 살해당한 피해자는 되살아나나요?
그럴 리가 없겠지요. 설사 없어진 물건이 되돌아오고 살해당한 피해자가 되살아난다 해도.
단 한 사람.
범인만은 불행해집니다.

사건이 일어난 그 순간부터,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길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 것입니다.
남은 것은 사건을 파해치고 음모를 해부하여 누군가 희생양을 찾아내는 것 뿐. 혹은 사건에 관여된 모두가, 이윽고 밝혀지는 충격적인 진실에 희생되는 것 뿐.
이것은 해답입니까? 이것이 사건이라는 비극에 주어질 수 있는 '해답'입니까?
쓰르라미 울 적에는, 이 질문에 단호히 '아니다'라고 말하는 작품인 것입니다.
사건이 일어났다. 누군가가 불행해졌고, 또 해결과정에서 누군가가 불행해 진다.
그 누구도 불행해지지 않는,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자. 이 모든 것을 해결할 '해답'을 찾아보자.
그리고 그것은 의외로 단순한 것.
'어떻게 하면 사건이 일어나지 않을 수 있었는가'라는 '해답'을 찾으면 됩니다.


돈이 궁해진 범인이 사람을 죽이고 돈을 빼았았나요?
그렇다면 그가 사건을 일으키기 전에 금전적 상담을 해 줍시다.

질투에 눈이 먼 범인이 사람을 죽이고 그 자리를 빼았았나요?
그렇다면 그가 사건을 일으키기 전에 질투를 풀 수 있도록 이야기를 해 봅시다.

외로움에 지친 범인이 결국 자해를 해서 자기 자신을 죽였나요?
그렇다면 그가 자해하기 전에 달려가 그의 외로움을 덜어 줘 봅시다.


사건에는 '동기'가 있습니다. 설사 우발적인 범행일지라도, 그것이 행해지게 되는 '계기'가 있습니다.
그것을 알아내는 것. 그리고 그것을 통해 사건을 미연에 방지하는 방법을 찾는 것. 그 누구도, 불행해지지 않는 길을 찾아내는 것.
바로 이것이, 쓰르라미 울 적에라는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해답' 인 것입니다.

4개의 '문제 편'에서, 플레이어는-그리고 주인공은-필사적으로 자신만의 해답을 찾습니다.
매번 되풀이되는 비참한 사건. 그 범인은 누구이고 어떤 동기와 트릭이 있는지.
사람들이 쓰르라미 울 적에를 '게임'으로써 즐긴 것도 바로 그러한 측면이지요. 범인을 찾아라! 트릭을 찾아라! 동기를 찾아라!

이윽고 발매된 첫 '해답 편'. 메아카시 편에서 그것은 절정을 이룬 듯이 보였습니다.
와타나가시 편에서 일어난 사건을 이른바 '범인의 관점'에서 보여줌으로써, 범인과 트릭과 동기를 동시에 피로했지요. 아직 남겨진 수수께끼가 여러 개 있었지만, 사람들은 그것들이 이후 발매될 다른 해답편에 공개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메아카시 편에, 이미 해답은 은유적으로 제시되어 있음을 알지 못하고.
그리고, 쯔미호로보시 편이 발매가 되었습니다.

지난 메아카시 편은, '문제 편'의 와타나가시 편에 대한 '해답 편'.
그리고 이번 쯔미호로보시 편은, '문제 편'의 오니카쿠시 편에 대한 '해답 편'.
이번에는 오니카쿠시 편의 범인 시점에서 이야기가 전개될 것이라 생각한 사람들 앞에 놓여진 것은,
'오니카쿠시 편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였습니다.

한 소녀가 말하는, 일생일대의 노력 이야기.
하지만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비극에 휘말려 갑니다. 그리고 그 비극은, 오니카쿠시 편에서 주인공이 휘말렸던 것과 똑같은 사건.
주인공은-플레이어는 물론 그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이대로는 또 똑같은 비극이 일어나 버리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 비극을 막는 방법은? 아주 간단합니다.
소녀가 주인공을 믿어주기만 하면 됩니다. 동료들을, 믿어 주기만 하면 그걸로 끝납니다.
주인공은 절규합니다. 믿어 달라고.
소녀 또한 절규합니다. 믿을 수 없다고.
그리고 이야기는 파국을 향해 치닫습니다.

믿어줘. 믿어줘. 제발 믿어줘.
이 이야기를 읽으며, 몇 번이나 이렇게 외쳤을까요. 주인공은 몇 번이나 외치고, 또 플레이어는 몇 번이나 외쳤을까요.
믿어주기만 하면, 사건은 일어나지 않을텐데. 그 누구도 불행해지지 않는 길이 여기 있는데.
그리고 그 순간,
플레이어는 깨닫게 됩니다.
아, 이런 것이 바로 '해답'이구나.

범인 따위, 아무래도 좋습니다.
사용된 트릭? 동기? 알게 뭐랍니까.
지금 자신은-주인공이자 플레이어는-이토록 강하게 한가지만을 바라고 있습니다.
이것만이 받아들여지면, 사건은 일어나지 않는다고. 즉-
이전 루트의 그 사건들이 일.어.나.지.않.게.하.는.데.필.요.했.던.것.은.
그 사건들의 '해답'은 바로 이것이었다고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필요한 것은, 비극을 일으킨 범인이 누구인가가 아니었습니다.
모든 사건의 뒤에서 웃고 있을 흑막인 누군가도 아니었습니다.
누군가가 불행해진 뒤에야 나오는, 두 번 다시 예전의 행복을 되찾을 수 없게 된 뒤에야 나오는 그런 싸구려 자기만족을 일컬어 우리는 '해답'이라 해서는 안됩니다.

범인을 잡고서 '이 녀석이 한 짓이었어!'를 외치는 것이 아닌,
불행 그 자체를 잡아서 '이렇게 되서는 안돼!'를 외치는 것.
어떻게 하면 사건이 일어나지 않을 수 있었는가.
바로 그것이, 우리에게 있어서-그리고 아마도 삶 그 자체에 있어서-'해답'인 것입니다.


누가 범인이라고?
그것을 찾는 이야기인 것이 당연하잖아?

누가 범인이라고?
애초에 '무슨' 범인인지 알고 있어?

누가 범인이야?
나를 이제부터 죽일 범인은 누구?!

《쓰르라미 울 적에-히마쯔부시 편(暇潰し編)의 오프닝》



예를 들자면, 쓰르라미 울 적에에서 그 해답이란 '신뢰'입니다.
4개의 문제 편에서 발생한 참극들. 우리는 그것들에 어떻게 대처해야 했는가?
범인이 누군지 추리하고, 트릭과 동기를 밝혀내야 하는가?
범인을 향해 손가락질 하고, 밝혀진 트릭에 감탄하고, 뜻밖의 동기에 분노해야 하는가?
다 죽어버린 다음에,
누군가가 불행해져 버린 다음에,
두 번 다시 예전의 행복은 돌아올 수 없게 된 다음에.
범인을 밝혀냈다고 환호해야 하는가?

그리고 마침내, 이야기의 클라이막스에서.
주인공은 '해답'을 외칩니다.


「......이 세상은 이미 미쳐버렸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포기해도 된다는 건 아니야. ......포기한다는 건 믿지 않는다는 거다. 나는 레나를, 동료라는 끈을 믿겠어. ......그러니까, 아직 괜찮아. 참극은 회피 할 수 있어. 운명에는 저항할 수 있어. 우리들은 발버둥친다. 그리고 움켜쥐는 거야, 그 앞의 미래라는 녀석을 말야!!」


이것이 바로, 주인공이 내놓은 '해답'입니다.
다른 추리극에서처럼 '범인은 이 녀석이다!'라고 외치는 것이 아닙니다.
시체가 몇 개나 생긴 후에 나오는 뒷처리가 아닙니다. 전혀 다른 형태의, 그러나 모든 불행을 막고자 하는 진정한 '해답'입니다.
친구를 믿고 타인을 믿자. 그것이 이전의 루트들에서 비극을 피할 수 있었던 '해답'이다!

그리고 그들은, 이 '해답'을 실천하기 위한 이야기를 시작해 나갑니다.


당신의 갈증을 달랠 수 없어.
진실을 원하는 당신이 그것을 인정하지 않으니까.

당신의 갈증을 달랠 수 없어.
당신이 기대하는 진실이 존재하지 않으니까.

그래도 당신의 갈증을 달래주고 싶어.
당신을 사막에 풀어놓은 것은 바로 나이니까.

《쓰르라미 울 적에-와타나가시 편(綿流し編)의 오프닝》



아직도 범인이 누군지 찾고 있습니까?
트릭이 무엇이고 동기가 무엇이었는지, 아직도 궁금하세요?
그 '해답'을 알게되면, 모든 것이 '해결'될까요? 모두가 행복해 질 수 있을까요?

아니겠지요. 그곳에 남는 것은 자기만족뿐.
범인을 맞추었던 사람에게는 자신의 상상력에 대한 자기만족을, 맞추지 못했던 사람에게는 진실을 알게 되는 자기만족을.

'쓰르라미 울 적에'는 바로 그런 이들에게 외치는 작품입니다.
그런 것은 아무 소용 없지 않느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런 것이 아니지 않느냐.
삶을 위해 필요한 것은, 어떤 불행이 어쩌다가 일어났는가를 그저 기술하는 것이 아니라
그 불행을 미연에 막기 위하여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가 아니겠는가.

설마, 게임을 하며 이렇게 엄한 충고를 듣게 될 날이 올줄은 생각도 하지 못했습니다.
범인이 누구인가만을 정신없이 쫓아다니다가, '그게 아니었구나'하는 깨달음에 전율을 느끼게 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렇기에 이 작품은, 저에게 있어 매우 특별한 이야기입니다.
단순한 감동이라면. 코끝이 찡해지는 슬픔이나, 속이 시원할 정도의 통쾌함이나, 아름다움에 대한 감탄이라면, 이미 다른 작품들에게서 꽤 여러 차례 맛본 적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작품 자체에 감동해 본 적은, 작품이 저에게 말하는 한 메세지 그 자체에 고개 숙여 본 적은 아마도 처음입니다.
어찌보면 교묘할 정도로 잘 숨겨져 있다가 중요한 순간에 깨닫도록 연출된 그 전달방법에도 감탄할 따름. 그냥 처음부터 '어떻게 하면 사건이 일어나지 않을 수 있었는가를 찾아보자'라고 대뜸 들이댔다면, 이런 설득력은 없었을테지요. 충분한 사건들을 나열하고, 또 플레이어가 그 동안 가지고 있던 편견에 따른 '해답'에 빠져 허우적댈 때에 조용히-하지만 날카롭게 한마디 하는 충격요법은, 어쩌면 이런 메세지를 전달할 수 있는 최상의 방법이 아닐까 합니다.

하지만 그래서
저는 이 작품을 '게임'으로 인정하고 싶지는 않아 집니다.


우물 안의 개구리는 행복했습니다.
우물 밖의 그 무엇에도 흥미가 없었으니까.

우물 안의 개구리는 행복했습니다.
우물 밖에서 그 무엇이 있어도 관계 없었으니까.

그리고 당신도 행복했습니다.
우물 밖에서 무엇이 있었는지 몰랐으니까.

《쓰르라미 울 적에-타타리고로시 편(祟殺し編)의 오프닝》



플레이어는 마치 우물 안 개구리와도 같습니다. 4개의 문제 편에서 마음껏 헤메이고 쫓깁니다. 범인은 누구지? 트릭은 뭐지? 동기가 뭐지?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거야?!!!
그리고 서로가 머리를 맞대고 토론합니다. 작은 단서에서라도 온갖 상상력을 덧붙여서, '해답'에 이르는 이야기를 구축합니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상상하였는지 듣고, 자신의 상상을 말해 봅니다.
이것은 두뇌게임.
제작자와 플레이어 사이의 게임이기도 하며, 플레이어와 플레이어 사이의 게임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해답'은?
플레이어들이 '게임'을 해 온, 열띤 토론을 통해 쫓아왔던 '해답'은?
그것은 어이 없을 정도로 간단한 것이었습니다. 공개된 해답은, 범인의 이름도 트릭의 종류도 동기의 폭로도 아닙니다.
그저 '동료를 믿었어야 했다'는 한마디 뿐. 그것이, 4개의 문제 편에서 발생한 참극을 '막을 수 있던' 해답이었습니다.
그리고 플레이어들은 모두가, 그 해답에 대한 '오답자'가 되어버리고 맙니다.
그 누구도 '어떻게 하면 사건이 일어나지 않을 수 있었는가'를 생각한 이는 없었으니까요. 플레이어들이 열심히 추리한 것은 어디까지나 '이미 일어나버린 사건의 진상'이었으니까요.
게시판을 가득 메웠던 글들도, 주위 사람과 열심히 나누었던 토론도. 사실은 이 '쓰르라미 울 적에'라는 '게임'이 원한 '해답'과는 전혀 상관이 없었던 것입니다.
이래서는 게임이 성립하지 않습니다. 의도 자체를 읽지 못한, 문제 자체를 잘못 받아들인 두뇌게임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있는 것은 전혀 엉뚱한 소란뿐. 게임조차 되지 못하는, 어긋난 목소리들의 집합 뿐.
아니, 게임이 성립하기는 합니다.
쓰르라미 울 적에라는 두뇌게임이란, 플레이어와 플레이어 사이에만 성립하는 것이 아니었지요.
제작자와 플레이어 사이에도 성립합니다.
그리고 이 게임은 제작자의 명백한 승리.
플레이어들이 과연 '진정한 해답'을 찾아줄지에 걸어본 제작자의 게임은, 제작자의 일방적인 승리로 그 막을 내린 것입니다.


사막에 비즈를 떨어뜨렸다고 소녀는 울었다.
소녀는 백년에 걸쳐 사막을 뒤진다.

사막이 아니라 바다일지도 모른다고 소녀는 울었다.
소녀는 백년에 걸쳐 해저를 뒤진다.

바다가 아니라 산일지도 모른다고 소녀는 울었다.
정말로 떨어뜨렸는지, 의심하기까지 앞으로 몇 년?

《쓰르라미 울 적에-메아카시 편(目明し編)의 오프닝》



저는 지금, 막 미나고로시 편을 플레이하는 중입니다. 대부분의 비밀이 이 미나고로시 편에서 밝혀지고, 남은 비밀들도 대단원인 마쯔리바야시 편에서 밝혀진다고 합니다만...
솔직히, 이제 그 '비밀'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전혀 흥미가 없군요.
이미 저는, 그 '해답'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동료를 믿을 뿐.
앞으로의 이야기에서 그 무슨 일이 일어날지라도, 동료들을 계속 믿을 뿐. 결코, 그들을 의심하지 않을 뿐.
그것이 바로, 그 누구도 불행해지지 않는 방법.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을 행복을, 잃지 않는 방법.
이것은, 4개의 문제 편에서 동료들을 의심했던 제가 할 수 있는 쯔미호로보시(속죄)이기도 합니다.


부디 탄식하지 마세요.
세계가 당신을 용서하지 않아도, 나는 당신을 용서합니다.

부디 탄식하지 마세요.
당신이 세계를 용서하지 않아도, 나는 당신을 용서합니다.

그러니까 가르쳐 주세요.
당신은 어떻게 해야, 나를 용서해 주겠습니까?



이 질문의 해답을, 저는 이제 알고 있으니까요.
'나는 당신을 믿겠습니다'라는 '해답'을.






 
쓰르라미 울적에 1기 오프닝



쓰르라미 울적에 1기 엔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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